아버지의 해방일지 / 정지아 장편소설 / 창비
한 등에 두 짐 못 지는 법인디…… / 정지아 작가의 장편소설 아버지의 해방일지 리뷰
이 책을 산 건 작년 9월 말이었다. 그때 인터넷 교보문고를 통해 오세영 작가의 <부자의 그림일기>, 안녕달 작가의 <눈, 물> 그리고 정지아 작가의 <아버지의 해방일지> 세 권을 샀는데 최근에야 두 달에 걸쳐 드문드문 책장을 넘겼고 드디어 오늘. 마지막 ‘작가의 말’까지 마지막 페이지를 읽고 책장을 덮었다. (아직 안녕달 작가의 책도 펴보질 못했는데 또 최근에 또 조국의 법고전 산책, 탁현민 전 의전비서관의 미스터 프레지던트, 정세현 전 장관님의 통찰이라는 책을 사부렀다.. 이건 또 언제 읽지... ㅡ_ㅡ;;)
사실 아버지의 해방일지는 첫 페이지를 넘기면서부터 단번에 마지막 페이지까지 볼 수 있는 이야기의 속도감과 재미, 몰입도가 높은 좋은 책인데 하필 처음에 책을 펴 본 곳이 벙커1에서 전시 지킴이 하러 나갔다가 중간에 울컥하는 장면이 나오는 바람에 사람들 많은데서 눈물을 훔칠 순 없었던 관계로 도중에 한 번 끊었었고 오늘에서야 나머지 이야기들을 읽게 되었다.
‘아버지가 죽었다. 전봇대에 머리를 박고. 평생을 정색하고 살아온 아버지가 전봇대에 머리를 박고 진지 일색의 삶을 마감한 것이다.’
이야기는 평생을 사회주의자 이른바 ‘빨치산, 빨갱이’라 불리며 살아온 아버지 ‘고상욱’의 부고(訃告)로부터 시작된다.
아버지의 죽음으로 인해 서울에 있는 대학에서 강사를 하며 퍽퍽한 삶을 전전하고 있던 화자(話者)인 ‘고아리’가 고향인 전남 구례로 돌아오게 되면서 아버지와 인연이 있었던 굉장히 다양하고 많은 사람들을 만나게 되고 장례식장에서 그들의 이야기를 직간접으로 접하면서 내가 알던 아버지는 과연 누구였을까? 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여정이다.
“시끄러. 오죽흐면 밤도망을 쳤겄어! 그 사람이라고 호의호식허고 삼시로 그 돈 안 갚겄는가. 오죽흐먼 친정에 연락도 못허고 죽은디끼 살겄어!”
“넘 사정은 그리 빤함시로 마누라 사정은 워째 깜깜 봉사까이. 팔다리가 쑤세서 밤도 제우 해묵고 끙끙 앓니라 잠도 못 자는디, 그 돈 있으먼 나 벵원이나 보내주제.”
아버지 고상욱은 사상이나 철학 같은 정신적인 영역에서는 비범하면서도 합리적인 판단을 하는 강하고 고집 센 캐릭터로 묘사되지만 또 동시에 아내에게 ‘문자 농사’를 짓는다고 핀잔을 들을 만큼 허술하고 서툰 면이 많은 캐릭터이기도 했는데 그런 사람의 부고 소식에 좌파와 우파 이념이 다른 사람들은 물론 뜻밖에 사람들이 진한 인연의 끈에 닿아 있음이 하나둘씩 밝혀진다.
화자인 고아리 또한 평생을 ‘빨갱이 부모의 딸’로 살아오며 감내해 와야 했을 애증의 관계가 있었고 또 글에 등장하는 모든 캐릭터들 또한 아픈 현대사로 얽히고설켜 감정이 무겁게 다가오기도 하지만 정지아 작가는 내내 고급스런 유머를 잃지 않고 이야기를 풀어내어 울다가 웃기를 반복하게 만든다.
아마 이 책을 읽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느끼는 것이겠지만 나 또한 내 아버지는 어떤 사람인가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되었다. 울 아부지도 소설의 고상욱처럼 밖에서는 참 좋은 사람인데 가족들에겐 참 섭섭한 구석이 많았던 애증의 시절이 있었더랬다. (물론 지금은 가끔 술도 한 잔 하면서 잘 지내고 있다. ㅋ)
마지막으로 이 책의 제목이 왜 <아버지의 해방일지>인가에 대해서 생각해 봤다. 처음에는 아버지의 빨치산 전력으로 인해 (아버지 혹은 화자가) 자신의 신념이나 꿈을 펼치지 못 하고 평생을 거대한 벽안에 갇혀 산 삶에 대한 자기 해방운동이 아니었을까 생각이 들었더랬다.
글을 다 읽고 난 뒤엔... 음... 이야기 속에서 작은 아버지가 말했듯 “사람이 한 등에 두 짐 못 지는 법인디……”와 같이 이건 인간의 보편적인 모든 삶이 투영되는, 좌파도 우파도 아닌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한 등에 두세 짐을 지며 살아가면서 겪었을 모든 좌절과 상실, 아픔과 고통으로부터의 해방일지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가 손을 내밀었다. 남은 유골은 반줌도 되지 않았다. 아이는 그걸 내 손에 쥐여주었다.
“할배가 그랬는지, 언니가 여개서 썽을 냈담서? 할배가 아줌마 궁뎅이 두들겠다고?
아무튼 아버지는 제 허물도 제 입으로 까는 데 선수다. 그것도 이 어린아이를 상대로.
“그때게 할배 맴이 요상허드래. 아부지라는 거이 이런건갑다, 산에 있을 적보담 더 무섭드래. 겡찰보담 군인보담 미군보담 더 무섭드래.”
아버지 유골을 손에 쥔 채 나는 울었다. 아버지가 만들어준 이상한 인연 둘이 말없이 내 곁을 지켰다. 그들의 그림자가 점점 길어져 나를 감쌌다. 오래 손에 쥐고 있었던 탓인지 유골이 따스해졌다. 그게 나의 아버지, 빨치산이 아닌, 빨갱이도 아닌, 나의 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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