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5월 7일 금요일

불행과 다행사이

 




불행과 다행사이


어머니께서 다치셨다.


지난 54일 오후 반차를 내고 전주 외가댁으로 내려갔었다.


외가댁 어르신들 묘를 파묘하고 화장해서 부부끼리 함께 모시기로 하였고 나는 막내딸의 아들로서 그리고 외할머니를 잠시나마 모셨던 인연의 정으로 함께 내려가게 되었다.


5일 새벽 다섯 시에 일어나서 6시경에 효자공원 묘지에 모였다.


7시부터 파묘하시는 일꾼들이 오기로 되어 있어서 서둘러서 여섯 분의 묘를 찾기 시작했는데 문제가 생겼다.


그나마 가장 최근에 돌아가신 분들은 위치를 알고 있었지만 오래 전에 돌아가신 분들의 묘의 위치를 정확히 아시는 분은 몸이 불편해서 못 올라가시고 막내 외삼촌이 그 설명을 듣고서 며칠 전에 사전 답사를 다녀오신 기억과 사진 한 장을 보며 더듬더듬 찾아야 했던 것이다.


외가댁 어르신들이 연세들이 많으셔서 그나마 젊은 축에 속한 막내외삼촌 가족과 막내딸 가족인 아버지와 내가 산의 곳곳을 누비며 산꼭대기까지 갔다가 중턱으로 내려오기를 반복하면서 수색을 했다.


전날 억수로 내린 비 탓에 산은 미끄러웠고 효자공원 묘지 자체가 자연장 느낌으로 수풀이 우거진 형상이라 모두 비슷하게 생긴 비석과 수목사이에서 어르신들 묘를 찾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다.


결국 일꾼들이 오기로 한 시간인 7시를 넘겨서 내가 어찌어찌 겨우 묘의 위치를 찾아내기는 했는데 이미 수색을 하던 사람들은 바지며 신발, 양말까지 모두 축축하게 젖어버린 후였다.


그래도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더 늦게 찾지 않아서 다행이었고 혹시라도 못 찾게 되면 더 큰일 이었기에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던 중 파묘를 한 후 유골상자를 하나씩 들고 산에서 내려가는 길에 어머니께서 미끄러지시면서 발등을 다치셨다.


걸음을 못 뗄 정도로 아파하셔서 겨우 부축해서 하산 한 뒤에 화장터까지 유골들을 모신 뒤에 차를 몰아 근방의 작은 동네병원으로 향했다.


55일 어린이날이라 의사는 있었지만 엑스레이를 촬영할 기사가 쉬는 날이라 진통제 같은 약만 처방 받고 다시 화장하는 곳으로 돌아와야 했다.


화장과 이장을 모두 마친 뒤가 오전 11시 반 정도 되었는데 어머니 상태가 안 좋으셔서 함께 식사 같은 것도 할 상황도 못 되고 해서 바로 서울로 향했다.


이튿날 아침 일찍 다시 오전 반차를 낸 뒤에 병원을 수소문했는데 회사 행사 때문에 집에서 쓰는 차도 빌려준 상태였고 대신 매제의 차를 빌리려고 했는데 또 통화가 안 되고 있는 상황이라 어떻게 병원까지 가나 고민하고 있었는데 아버지께서 다니시는 동네 병원에서 휠체어를 빌려 보겠다고 하셔서 회신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병원에서는 1층까지만 빌려드리는 거라 우리집까지 가져오는 것은 안 된다고 했고 대신 동주민센터에서 무료로 대여를 해주니 알아보라고 했다.


그래서 난 다시 동사무소로 전화를 걸어서 휠체어 대여를 문의했는데 다 대여로 나가서 한 대도 없는 상황이라는 응답만 들을 수 있었다.


또 어떻게 해야 하나 싶어서 길동에서 휠체어를 살 수 있는 곳을 검색하고 있었는데 마침 어머니께서 성심병원 앞에서 의료기기 파는 곳이 있었던 것 같다고 말씀해주셔서 서둘러서 그곳으로 향했다.


마침 휠체어가 두 대 있었고 하나를 사고 끌고 와서 어머니를 모시고 병원으로 갈 수 있었다.


이쯤에서 화딱지가 날 법도 했으나 난 또 휠체어를 살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또 문제가 생겼다.


큰 병원은 사람도 많고 입장절차도 까다로워서 동네 작은 병원에서 엑스레이를 찍는 게 더 수월 할 것 같다는 판단으로 동네 병원을 찾았는데 엑스레이를 촬영한 뒤 골절이라는 판정은 받았지만 이걸 깁스를 할지 아니면 수술을 해서 철심을 박아야 할지를 결정해야 하는데 해당 병원에서는 깁스만 가능하고 수술은 할 수 없는 병원이라는 것이었다.


결국 그 곳에서 아주 큰 병원은 아니지만 중형 정도 되는 병원 세 곳을 추천 받아서 찾아가기 시작했다. 그런데 또 여기서 문제가 생긴다.


휠체어를 몰고 간 처음 간 병원은 사람도 많고 북적이는 상황이었는데 대기표를 뽑고서 한참을 기다리다가 접수창구에서 발 골절로 왔다고 하니까 발쪽 담당하는 의사가 며칠 뒤에나 오셔서 예약을 한 뒤에 며칠 뒤에나 진찰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었다.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나는 그렇게 못 하겠고 차라리 인근에 있는 두 번째로 소개 받은 또 다른 병원으로 향했는데 거기서도 담당의사가 오후 1시 반에나 오셔서 그때 다시 접수해야 진료가 가능하다고 했다.


시간도 시간이지만 접수창구가 너무 한산해서 여기 잘 하는 병원 맞나 의심이 들 정도였고 거의 점심시간이 다 된 상황이라 일단은 집으로 모시고 와서 점심을 차려 드린 뒤 혹시나 해서 세 번째로 소개해 준 병원을 나만 따로 사전답사를 다녀왔다.


그런데 그곳은 오후 두 시가 돼야 담당 의사한테 진료를 받을 수 있다고 해서 어머니와 고민 끝에 두 번째 병원으로 가기로 했다.


오전 반차 냈던 것을 그냥 월차로 사용하기로 회사에 전달했고 결국 두 번째 병원에서 엑스레이 다시 찍고 또 정밀검사를 위해 mri까지 촬영한 뒤에 의사 소견을 기다리고 있었다.


나이도 있으신데 수술보다는 깁스가 나을 것 같아서 초조하게 결과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다행히도 반 깁스 결정이 나왔다. 그래서 또 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어머니께서는 이장으로 마지막 부모님 모시는 길에 다치셨고 또 얼마 뒤에 아트페어 전시도 있으셔서 그림 그릴 시간도 모자란데 왜 이런 일이 닥쳤는지 불행처럼 여기실 지도 모르겠지만 난 그래도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더 크게 다치시지 않아서 다행이고 휠체어를 살 수 있어서 다행이고 수술하지 않아도 돼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불행과 다행사이의 어딘가 쯤에서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면 다행이 낫다.


불행의 끝은 소름끼치고 생각하기도 싫지만 다행은 생각할수록 감사한 마음이 들기 때문이다.


이만해서 정말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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