퓨처에코 7월호 인터뷰 기사
FUTURE ECO 2019 July
세상의 아픔을 보듬고 위로하고 싶었다.
존재의 이유,
작가로서의 역할에 대한 고민이
작업의 원동력
조아진 작가
상처 받고 삶이 힘든 이들, 고통 받고 신음하는 인간과 자연을 보듬어주고 위로해주는 것이 자신의 길이라고 말하는 작가가 있다. 만화가, 일러스트레이터이자 화가로 분야를 넘으며 활동해온 조아진 작가는 신과 인간, 자연과 생명에 대한 오랜 고민과 치열한 삶에서 얻은 깨달음을 캔버스 위에 풀어 놓는다. 많은 현대인들은 자신의 아픔에 갇혀 타인과 자연의 고통에는 무감각하다. 먼저 위로하고 사랑할 줄 모른다. 작가는 그림을 그리는 화가로서 무언가를 해야 한다면 그것은 나만을 위한 자위로서가 아닌 신의 뜻이면서 동시에 인간과 자연이 공존할 수 있는 모색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세상의 아픔을 그대로 드러낼 것인가, 아니면 보듬어주고 위로할 것인가의 기로에서 그는 후자가 자신의 길이라 생각했다.
세상에서의 역할에 대한 고민
작가는 인터뷰 중 종종 신에 대한 믿음을 드러냈다. 슬럼프를 작품활동을 통해 이겨낼 수 있었던 지난날과 달리, 작년 말부터는 창작행위 자체에 흥미를 가질 수 없었다고. 작가는 그렇게 수개월이 지나도록 캔버스를 쳐다보지도 않았다. 개인적인 아픔의 시간들과 엮여 다시 붓을 들게 한 것은 세월호 참사,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이었다. 작가에게 예술작품은 전시나 감상용이 아닌 사람들의 희로애락의 틈 사이에서 해야 할 역할이 있는 것이었고 그래서 가슴 아픈 이야기들을 지나칠 수 없었다고. 그러나 그러한 아픈 이야기들은 듣고 보고 이해해야만 그릴 수 있는 것이어서 작가에게는 고통스러운 작품활동이었으며, 정신적, 육체적 에너지를 모두 소모시켜 버리게 했다. 그때 그에게 위안과 위로가 돼준 것은 종교였다. 세상의 아픔들과 개인적인 죽음의 체험을 겪으며 그는 신께 이 땅의 고통에 대해 물었다. 그리고 이 세상에서의 자신의 역할에 대해 고민했다. 그는 나 혼자 사는 세상이 아니기에 사회에 필요한 손이 있다면, 그림으로서 도움이 될 공간이 있다면, 당연히 해야 한다는 의식을 갖게 됐다.
“작가들 중에는 너무 고상한 척하는 작가들이 많아요. 하나의 장르, 삶을 바라보는 태도가 예술일 뿐이지 그게 하나의 격을 만들어주거나 그 사람의 동기를 부여해주지는 않는다고 생각해요. 저는 예술밖에 할 줄 모르고 예술을 통해서 살아가는 한 사람일 뿐이에요. 그렇게 살아간다면 예술도 이 공간 환경을 구성하는 하나의 주체로서 책임과 의무가 있는 것이죠.”
‘왜?’라는 물음에서 시작된...
그가 붓을 드는 시작은 ‘왜?’라는 물음. 존재의 이유에 대한 연구에서다. 그에게서 ‘왜 살까’는 가장 궁금한 부분이고 그 답을 인간과 자연, 인간과 동물의 공존의 의미에서 찾기도 했고, 최근에는 종교에서 의미를 찾았다고. 그리고 인터뷰 중, 내가 보는 시각에서의 환경이 아니라 저 우주 밖에서 내가 나를 내려다보는 시각이 존재한다면, 이 세상이 어떻게 보일까가 갑자기 궁금해졌다고 했다. 그에게서 존재의 이유에 대한 연구는 그림을 그리는 원천이며, 그는 종종 그 실마리를 기억에서 끄집어낸다.
“경험하지 않은 것은 그리지 않아요. 지난 그림을 토대로 기억 퍼즐을 맞추듯 재해석 하는 것. 저의 그림은 모두 과거의 기억 조각들이에요.”
이러한 그의 생각은 표현방법에도 그대로 투영된다. 현대미술과 컴퓨터그래픽이 섞여 있는 그의 작업방식은 조각들의 해체와 재조합니다. 대상을 삼각형이나 사각형으로 조각내고 상하좌우를 회전시켜 대상이 원래 가지고 있던 이미지를 재해석하는 것. 조각을 내서 새로운 인상을 만들어내는 작업인데. 이것은 아직 완성체가 아니어서 공부를 더해야 한다고 작가는 말했다. 그리고 이러한 분해와 재조합은 대상이 갖는 고유한 느낌을 더욱 더 확연히 드러내기도 하며 반대로 대상의 내면을 몽환적으로 풀어낼 수 있게도 만든다고. 작가에게는 같은 대상을 달리 볼 수 있게 만드는 방법으로서 활용된다. 그것은 때로 만화경 같은 다이내믹하고 익살스러운 느낌을 주기도 하고 때론 각각의 조각이 입체성을 드러내기도 하며 오히려 반대로 2차원적 시공에 가두기도 한다. 작가에게 그와 같은 시도를 하는 이유에 대해 묻자, 그는 “근본을 알아야 변화가 가능하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뭔가를 그리고 싶으려면 그리는 이유에 대해서, 방법적인 것에 대해서 완벽하게 이해가 다시 돼야겠다고 생각했다는 것이다.
“지금은 해체해놓은 상태이며, 해체는 해놓았는데 조립이 안 된 상태예요. 원래 그릴 줄은 알지만 분해를 해놓고 다시 합치지는 못하고 있는 상태에요.”
정체성에 대한 질문, 이제는 장점이라고 생각한다.
작가는 미술과 관계된 많은 영역에서 경험을 쌓았다. 대학에서는 애니메이션을 전공, 한 장의 그림으로 상징하고 비유해 의도를 드러내는 카툰에 매력을 느껴 웹툰 작업을 했으며, 프리랜서 기자와 예술디자인 및 만화게임영상학부 강사로 일하기도 했다. 지금은 화가이신 부모님의 매니저 역할을 하고 있고 미술교육사업도 꽤 오랫동안 해오고 있는 일이다.
작가로서 자신의 그림을 본격적으로 그린 것은 30대 중반이다. 자신이 이해할 수 있는 범주의 그림을 그리고 자신이 이해할 수 있는 정도의 그림만 그린다는 그는, 그림 작가로서도 일러스트, 추상화, 수채화 등 다양한 범주의 작업활동을 한다. 각양각색의 작품들로 인해 그에게 자연히 묻게 되는 질문은 정체성에 대한 것이다.
“저는 미술밖에 못하는 사람이고 이중적인 삶에서 영리기업을 하면서 이상적인 삶을 꿈꾸고 한쪽에서는 만화 같고 한쪽에서는 너무 회화적인 틈바구니에서 외줄타기같이 살아왔는데, 예전에는 그것이 장점인 줄 몰랐어요. 지금은 내 장점이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싶은 동기에 따라 주제도 양식도 재료도 달라져야 한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최근 들어서는 재료를 특이하게 하고 상징주의적, 추상주의적 화법으로 하고 있다. 스티로폼을 붙여서 아크릴 작업을 하기도 하고 CG 작업을 하기도 한다. 거친 질감을 표현할 때는 젯소에 커피가루를 쓰기도 하고 스티로폼과 섞어서 작업하기도 한다. 현대회화에서 카툰과 닮아있는 게 추상화이고, 그래서 그의 그림에는 만화적인 기법이 혼재돼 있다. 갤러리에서는 이런 그의 작품에 독특하다는 반응을 내놓는다.
그에게 어떤 작가가 되고 싶으냐고 물었다. 그는 작가는 직업군이라 별 의미는 없는데, 어떤 사람은 되고 싶다며, 막연한 자유로움에 대한 갈망, 추구가 있다고 했다.
“제가 좋아하는 사람들이 별 생각 없이 사는 것 같은데 행복하고 같이 얘기만 나눠도 재밌어지는 사람이더라고요. 그런 사람만 그려도 재밌겠다 하는 마음의 여유로움, 정신적 여유로움이 생겼으면 좋겠어요. 밝아지는 사람, 기분 좋아지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그림으로서 하겠지만 그림만으로는 안 되겠죠.”
작가를 삶을 바라보는 태도이자 살아가는 방식 중의 하나라고 말하는 조아진 작가. 그러면서도 그는 예술밖에 모른다고 말한다. 그림을 그리는 자로서 그는 자신이 서 있는 위치에서 자신이 사회에서 할 수 있는 역할에 대한 고민을 계속할 것이다. 그의 고민은 우리에게도 생각할 거리를 안겨준다.
박희정 기자
작가 조아진 프로필
개인전 4회 및 단체전 70여회
부스 개인전 및 아트페어 10회
애니메이션 및 만화제작 30여회
월간 아트앤씨, Art & Conversation, 애니메이션과 사람이야기 연재
월간 미술인 화실탐방 및 청년작가 추천 연재
경희대학교 예술디자인학부 디지털콘텐츠전공 강사 및 예원예술대학교 만화게임영상학부 강사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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