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9월 22일 목요일

목론 (目論) 리뷰 / 故 오세영 작품집 부자의 그림일기 中

 목론 (目論) 리뷰 / 오세영 작품집 부자의 그림일기





쌀쌀한 초겨울의 어느 날 아침.


말끔하게 정장을 차려입은 한 남자가 전철이 들어오길 기다리고 있다. 그런데 겉모습이 굉장히 독특하다.


쟉딱쨕쟉딱쨕쨕 쟉딱딱쨕쨕쨕딱쨕


경망스럽게 껌을 씹어대는 소리하며 또 머리에 두른 손수건은 정장을 잘 차려입은 신사의 품격 같은 것들과는 거리가 먼 것들이었다.


이윽고 전철이 도착하자 재빨리 안으로 들어서는 주인공. 연신 껌을 씹으면서도 빈자리를 살피느라 시선 또한 분주하다.


좌석에는 졸면서 자꾸만 옆 자리의 아주머니에게 머리를 떨구고 있는 아저씨와 또 불쾌한 표정으로 자기의 어깨에서 머리를 밀쳐내기 바쁜 아주머니, 커다랗게 신문을 펼쳐든 사내와 연인끼리 붙어 앉아서 도란도란 얘기 중인 사람들이 앉아 있었는데 주인공이 앉을 자리 따위는 없었고 하는 수 없이 주인공은 연인들이 앉아 있는 자리 앞의 기둥을 붙잡고 선다.


쟉딱쨕딱쨕 쟉딱 딱!”


아이를 안은 한 젊은 여성이 마지막으로 전철 안으로 들어서고 마침 그때 앉아서 졸고 있던 사내가 황급히 잠에서 깨 벌떡 일어나 문이 닫힐까 쏜살같이 뛰어 나간다.


아이를 안은 여성이 그 빈자리에 앉을 것처럼 보였지만 빈자리를 호시탐탐 노리고 있던 주인공이 어느 샌가 저 끝 기둥자리에서부터 미끄러지듯 달려와 좌석에 쏙 들어가 앉고선 태연하게 다시 껌을 씹기 시작한다.


쟉딱쨕딱딱딱 쟉딱쟉딱 딱쟉딱쟉


밉살스러운 이 주인공의 행동에 한마디 내뱉는 어르신과 아이를 자기에게 달라고 손짓하는 아주머니. 이윽고 문이 닫히고 전철이 움직이기 시작한다.


!”


무언가에 놀라 똥그란 눈을 하고서 자신의 다리를 쳐다보는 주인공. 옆자리에 앉은 아이의 발이 자신의 정장 바지에 닿았는지 황급히 바지를 털어내고 아이의 어머니는 어쩔 줄 몰라 하며 고개를 숙인다.


쟉쟉 딱딱 딱!” 다시 자기만의 껌 씹기 루틴으로 돌아온 주인공.


문득 머리에 두른 손수건을 풀고 안주머니에서 손거울을 꺼내 머리 모양새를 살피는데 삐친 머리카락 한 올 없이 정갈하게 잘 붙어 있어 꽤나 만족스러운 표정이다. 그런데 그때 옆자리에서 커다랗게 신문을 펼쳐 읽던 한 사내가 신문의 페이지를 넘기다가 신문의 끝부분이 주인공의 머리를 건드리게 되고 이를 눈치 챈 주인공은 다시 손거울을 꺼내 확인하는데 아니나 다를까 머리카락 몇 올이 삐져나와 있다.


쟉쟉쟉 쟉쟉쟉 쟉쟉쟉쟉쟉!”


주인공은 붉으락푸르락 해진 얼굴로 감정을 담아 껌을 씹으며 옆자리에 앉은 사내를 노려보고 신문을 든 사내는 신문을 아래로 다소곳하게 내린 뒤 신문 사이에 고개를 푹 묻으며 모른 체 한다. 주인공이 황급히 손바닥으로 삐친 머리카락을 단단히 밀어 붙여 보지만 소용이 없다. 하는 수 없이 다시 손수건을 꺼내 머리에 두르는 주인공. 마치 자신의 머리카락을 함부로 건드리지 말라는 듯 두 팔을 커다랗게 펴 양쪽 옆의 사람들에게 시위하듯 휘두르며 손수건을 졸라맨다.


톡톡톡 톡톡톡톡


어느새 다음 정차장에 도착했고 시각장애인 한 명이 지팡이로 바닥을 살피며 전철에 오르지만 아무도 자리를 양보하는 사람은 없다. 시각장애인은 주인공의 앞에서 전철의 손잡이를 잡게 되고 주인공은 껌을 씹다 말고 그를 보며 쯧쯧한마디를 내뱉는다.


쟉딱 쟉딱 쟉쟉 딱 쟉쟉쟉쟉 딱딱


얼마간의 시간이 흐르고 여전히 경망스럽게 껌을 씹어대던 주인공이 머리에 두른 손수건을 풀고 손거울을 꺼내 든다.


삐져나왔던 머리카락이 제대로 고정되어 있는 것을 확인 한 뒤 마치 옷감에 풀을 먹이듯 손바닥에 침을 뱉어 정성스레 발라준다. 어느새 하차할 곳까지 도착한 주인공이 자리에서 일어서 넥타이와 옷매무새를 정리하는데 주위에 같이 앉아 있던 사람들이 그의 뒷모습을 보고선 눈이 휘둥그레진다.


새로 묶은 손수건으로 인해 주인공의 뒷머리는 볼썽사나운 까치집이 생겨 있었고 팽팽하게 잘 다려져 있던 양복에는 주름이 한가득 했던 것이다.


쟉딱 쟉쟉쟉딱 딱쟉쟉


껌을 씹으며 의기양양한 발걸음으로 문 앞으로 향하는 주인공과 같은 하차 지점이었는지 시각장애인 또한 지팡이로 바닥을 두드리며 문 앞으로 향하는데 함께 문 앞에 선 둘의 뒷모습이 상당히 대조적이다.


눈앞의 것만 신경 쓰던 나머지 후줄근한 뒷모습을 한 주인공과 눈이 보이진 않지만 훨씬 더 정갈하고 반듯해 어딘가 고상한 품격마저 느껴지는 시각장애인의 뒷모습. 이 단편만화의 책 제목이 목론(目論)’인 까닭이다.


열린 문 사이로 다시 사람들이 내리고 타기를 반복하고 아이와 함께 탔던 젊은 여인이 아주머니로부터 아이를 받아 자리에 앉는 사이 주인공은 아무것도 모른 체 제 갈 길을 가고 이 모든 광경을 힐끗 쳐다보던 어르신이 한마디 내뱉는다. “쯧쯧쯧!”


며칠 전에 뉴스를 통해 삐진 머리를 하고서 기자들 앞에 선 윤통을 보면서 뭐 그럴 수도 있지했다가도 손에 자를 쓰고 다니질 않나, 바지를 반대로 입지를 않나 또 어제 터진 이 새끼들이라는 국제적 망신의 결례 외교까지... 이 광경을 어디서 본 것 같은데 하는 기시감에 곰곰이 기억을 떠올리다 보니 대학생 시절 보았던 오세영 선생님의 작품집 부자의 그림일기에 수록된 단편 목론이 떠올랐더랬다.


이 작품에서 한심하다는 의미로 이 사용되었듯 나도 한 마디 내뱉으며 글을 마무리한다. “! ! ! !”


추신. 오세영 선생님의 부자의 그림일기는 정말 불후의 명작입니다. 꼭 사서 보시길 추천 드립니다. 거북이북스에서 양장본으로 나와 있고 저는 교보문고 인터넷 구매를 통해 구입했습니다.


교보문고 인터넷 서점 링크 공유합니다.


http://www.kyobobook.co.kr/product/detailViewKor.laf?ejkGb=KOR&mallGb=KOR&barcode=9788966072835&orderClick=LAG&K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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