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이 / 글 앙헬 부르가스 / 그림 이그나시 블란치, 안나 아파리시오 카탈라 / 김정하 옮김 / 노란상상
“내가 좋아하는 사람만 내 그림을 함께 즐길 수 있어”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하는 두 친구가 있었다.
마치 마술사처럼 멋진 모자를 쓴 소년은 무채색에 가까운 색들로 그림을 그리고 마치 요정처럼 투명한 날개를 가진 소녀는 알록달록 화려한 색들로 색을 칠하고 있다.
무엇으로 도화지를 채워 넣을지 스스로 결정하고 어떤 색으로 칠할 건지도 또 어떤 친구들이 등장하게 할 건지도 모두 자기 스스로 정한다.
돼지와 마술사 아저씨, 홍학, 날벌레 친구들을 그려 넣은 소년은 도화지로 소환된 그 친구들과 파티를 준비 중이고 소녀 또한 작은 오랑우탄과 호랑이, 거미 친구들과 함께 자신만의 도화지에서 파티를 준비 중이다.
서로 사뭇 다른 분위기의 그림들이지만 각자 자신들이 아끼고 사랑하는 것들로 자기만의 도화지를 채워나가고 있다는 것만은 분명하다.
그렇게 자신만의 도화지를 한창 채워나가던 도중 갑자기 달갑지 않은 상황이 찾아왔다.
“누가 내 그림에 손을 댄 거야?”
“내 그림은 나만 그려야 해. 하지 마!”
서로의 영역을 함부로 침범한 작은 꽃 한 송이들.
무채색 소년의 세계에 강렬한 빨간 꽃 한 송이가 그려져 있었고 알록알록한 소녀의 세계에 우중충한 색의 꽃 한 송이가 떡하니 그려져 있었다.
소년과 소녀를 비롯하여 서로의 친구들은 무서운 표정으로 크게 화를 내기 시작했고 급기야는 서로 뒤죽박죽 뒤엉켜 커다란 싸움이 벌어진다.
그리고 그들의 세계를 가득 채웠던 초목과 꽃들이 짓밟히고 꺾여 나간다.
“어? 내가 지금 어디에 있는 거지?”
“그런데 이쪽에서 보니까 그림이 달라 보여!”
뒤죽박죽 대혼란의 싸움 뒤 겨우 정신을 차린 소년과 소녀는 자신의 세계가 아닌 서로의 영역에서 상대방의 그림들을 보게 된다.
“만약에...”
“우리가 함께 그림을 그리면 어떨까?”
이윽고 무채색도 유채색도 모두 한데 어우러져 하나의 세계를 가득 채우고 있는 장면이 펼쳐진다.
서로를 다치게 했던 그들이었지만 그들은 어느새 같이의 가치와 의미를 깨달은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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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가족들에게 내가 몇 년 전부터 같이 해보자고 했던 프로젝트가 있었다.
100호 정도 되는 캔버스에 우리 가족들 모두 함께 같이 그림을 그려보자는 것이었다.
서로의 장단점들이 있으니 내가 밑작업을 하고 그 위에 아버지가 조형적 이미지 틀을 그린다. 그리고 어린 조카들을 포함해서 동생가족들이 곳곳에 그리고 싶은 이미지들을 얹으면 마무리의 장인이신 어머니께서 최종 정리를 해주시는 식이다.
결국 서로 바쁘기도 하고 또 서로 화풍이 다르기 때문에 어려운 작업이 예상되어 지금까지도 시작을 못하고 있다.
이런 스토리가 있다 보니 이 “같이”라는 책의 의미가 또 남다르게 다가왔다.
한편 이 책의 스토리는 “너와 나는 서로 다르고 나와 다른 너는 곧 적이다.”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에 대한 은유이기도 하다.
도화지는 정해져 있다.
누군가는 파란색 크레파스를 들 수도 있고 또 누군가는 빨간색을 또 어느 누군가는 아예 무엇인가를 그릴 엄두도 내지 못하고서 아예 크레파스를 들지 못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
그렇지만 결국 우리는 하나의 도화지 위에서 살아가야 하는 존재들인 것만은 분명하다.
지구라는 도화지에는 다양한 사람들과 동식물들이 살아가고 있고 대한민국이라는 도화지도 마찬가지이다.
성별, 인종, 국가, 종교, 나이... 그리고 최근에는 대선후보를 뽑느라 다들 치열하게 다투고들 계신다.
초등학교 시절. 남녀 짝꿍이 붙어있는 2인용 책상을 사용할 때면 의례히 38선을 가르고선 서로 넘어오지 말라고 엄포를 놓았던 때가 다들 있었을 것이다. (어릴 때 난 숫기가 없어서 여자애 앞에서 말도 못 붙였지만...)
도화지가 그 누구만의 도화지가 아니듯, 그 누구의 책상이 아닌 우리의 책상, 그 누구의 학교가 아닌 우리의 학교 그리고 그 어느 누구의 나라가 아닌 우리의 대한민국이라 생각하면 어떨까.
우리는 모두 같은 도화지 위에 사는 각기 다른 색의 점들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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