쉼 없이 걸어 촛불을 만났다 / 최민희 / 21세기북스
이 책은 최민희 전의원의 대학생 운동권이던 시절부터 현재의 이야기를 김유진이 묻고 최민희가 답하다, 즉 인터뷰의 형식으로 펴낸 글이다.
책에서 작가는 ‘내가 예전에 이렇게 살았다, 한마디로 나 이런 사람이거든’ 류의 책을 쓰기에는 별로 내세울 것이 없는 사람이라고 말하는 동시에 우리 ‘같이 고민해보자, 이렇게 한번 고민해보자’의 의미로 이 책을 준비했다고 한다.
책을 읽고 난 뒤 충분히 이해될 만한 사실들과 공감할 만한 감정들이 담겨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에는 과거부터 현재에 이르는 우리나라의 사회운동의 변화과정과 시대의 흐름이 정리되어 있다. 특히 여성으로서 아니, 대한민국의 한 인간으로서의 고민 그리고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청년기의 ‘나’와 현재 장년기가 된 ‘우리’의 모습을 총체적으로 담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난 1977년생으로 기존에 여자대학에서 남녀 종합대학으로 막 바뀐 1996년에 만화예술이라는 새로운 신설학과에 혹해서 대학엘 입학했다.
나중에서야 선배들을 통해 알게 된 사실이었지만 학교 측에선 여대가 남녀 종합대학으로 바뀐다는 사실을 학생들에게 알리지 않은 체 일을 강행했었던 거였다. 당시 남학생들은 남자 화장실이 왜 이렇게 없냐고 툴툴 거렸고 여선배들 (여대였으므로 어차피 여자 선배밖엔 없는 게 당연했지만) 입장에선 우리 남학생들이 괜히 밉상이었다고 했다.
아무튼 그때 예술대 학생회라는 것이 처음 생기는 상황이었고 우리 과의 몇몇 남자동기들은 예쁜 사진과 선배 회장님의 꼬임에 넘어가 예술대 학생회 활동을 아주 짧게 했었는데 기껏 한 것이 그림 그리는 과라는 이유로 현수막에 글을 쓰는 일이나 대자보에 만화를 그리는 일들을 했었던 기억이 난다. 학생운동이라고 할 수도 없는 수준의 것들이었다.
이 책을 읽을 때 초반에 책장을 좀 넘기기가 힘들었었던 이유는 아마도 나같이 정치나 사회운동에 관심이 없거나 적었을 나이 대의 사람들은 불과 삼십년 전의 이야기라 할지라도 마음에 확 와 닿지 않는 것이 당연할 것이라는 점이다.
하지만 앞서 언급했듯 이 책은 내가 기억하는 시절들부터 현재까지의 이야기가 담겨져 있다. 그래서 과거의 문제로부터 현재의 문제까지로 이어지는 그 흐름의 원인과 이유가 점점 더 흥미로워지는 구조로 되어 있다.
사실 내 나이도 이젠 아저씨의 나이가 되긴 했지만 ‘자서전’ 류의 글은 잘 읽지 않는다. 누군가가 ‘나 때는 말이야’ 하는 순간 단순히 꼰대라고 치부해 버리는 사람들도 물론 문제가 있겠지만 문제의 본질은 ‘그때와 지금은 다르고 나와 너는 다르다‘라는 상대주의를 아저씨, 아줌마라고 불리는 ’어른‘들은 곧잘 망각하기 때문이다.
이 책은 그런 점에서 참 좋았다. 오늘날 우리에게 당면한 검찰개혁과 언론개혁의 방향에 대해 사회운동의 어른으로써 훈계를 하는 것이 아니라 ‘자, 이런 사실들과 사건들이 있었습니다. 우리 다음 시대에 대해 우리들의 고민을 함께 나눠보면 어떨까요?’하고 청유하고 있는 것이다.
더불어 인터뷰어인 김유진님은 1971년 생으로 그래도 그나마 나랑 나이차가 크게 나지는 않았기 때문인지는 몰라도 내가 궁금했던 것들이나 의문스러웠던 지점들에 대한 질문들이 대체로 궤를 같이해서 좋았던 점도 있다.
그렇지만 뭐니 뭐니 해도 역시 최민희 님의 응답이 좋았다. 상대방에 대한 배려가 있었고 인간에 대한 애정이 보였으며 개인적인 감상이겠지만 마치 나 같은 나이 대와 정치나 사회운동을 잘 모르는 사람들에게 무척 겸손한 태도로 조언해주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다.
최근의 나는 앞으로의 ‘나’나 내가 몸담고 있는 ‘우리 회사’의 미래에 대해 고민하고 있었고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까에 대해 막막함과 막연함을 갖고 있었다. 물론 ‘나’의 입장이나 생각이 ‘우리’라고 부를 수 있는 것들과는 많은 것들이 상충되고 대립될 수 있겠으나 ‘집단지성’의 흐름을 외면해서도 안 되고 그럴 수도 없다는 것이 이 책을 통해 얻게 된 깨달음이다.
모두에게는 각자마다의 무익하거나 유해한 ‘풀’이 있고 ‘내’가 당장은 못하더라도 누군가는 그 뜻을 받아 그 풀을 뽑고 그 땅에 유익하고 이로운 것들을 심어 잘 가꿔 후대에게 남겨야 한다. 그 누군가가 여기에서는 ‘큰 바위 얼굴’로 묘사되고 있고 최민희 작가는 그것이 특출 난 한 사람이 아니라 우리 모두여야 한다고 말한다.
이 책의 문장을 옮기며 글을 마무리 한다.
“제가 중학교 때 <큰 바위 얼굴>을 읽고 마음속에 꿈을 품었어요. 시대가 어지러우면 ‘초인’을 꿈꾸게 되는 것이 이치인가 봐요. 누구나 큰 인물이 축복처럼 나타나 우리 미래를 밝혀주길 간절히 바라면서 ‘큰 바위 얼굴’을 기다렸거든요.
그런데 이분인가 하다가 실망하고 다시 아, 이 사람인가 보다 하다가 좌절하길 반복했는데 어느 날 문득 깨달았어요.
암에 걸려서도 건강이 조금 회복되자마자 일터로 나온 그 언니, 아들이 이혼하고 손자를 키우면서도 마을 봉사 활동에 열심인 그 할머니, 한쪽 눈이 거의 실명에 가까운 상태임에도 주민자취위원회 회의에 나와 자기 책임을 다하는 그 사람, 한파가 몰아치는 밤에 붕어빵을 굽는 그 어르신, 등이 새우처럼 휘어져도 자식새끼 먹여 살리느라 일터로 향했던 우리 아버지들, 누구보다 ‘무릎 꿇고 살기보다 서서 죽기를’ 실천했던 많은 열사들, <그리스 로마 신화>의 비극적 영웅처럼 우리 곁을 떠난 노무현 대통령.... 제가 거리에서 만난 모든 분들이 ‘큰 바위 얼굴’이 아니었을까 하는 데 생각이 미친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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