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그림 1 (카투니스트 / cartoonist)
96년 대학교 1학년 때 김동진 교수님의 카툰 수업에서 교수님께 엄청난 칭찬을 들은 뒤로 내가 정말 카툰(Cartoon)에 재능이 있나? 하고 착각했었던 적이 있었다.
카툰은 한 컷의 그림으로 모든 것을 표현하는 것으로 글이 간혹 들어가기도 하지만 최고의 작품은 그림으로만 표현하는 것으로 그리는 사람이나 그 그림을 보는 사람 모두 안에 담긴 내용을 사전에 알고 있어야 하며 그렇기에 고급 지식인들의 장르라는 표현도 하셨던 것 같다. (너무 오래 전이라 정확하진 않음)
교수님께서 어느 정도의 칭찬을 하셨냐면, 그때 교수님께서 동기들 앞에서 내 작품을 들고 서 “이런 게 바로 카툰입니다. 여러분!”이라고 하셨었다. 그래서 군대가기 전까지 잠시나마 내 꿈은 ‘카투니스트(Cartoonist)가 되자!’ 였다.
2001년 군을 제대하고 복학 한 뒤엔 카투니스트의 꿈을 접고 애니메이션의 배경감독이 되고자 생각한 적도 있었지만... 대학을 졸업한 뒤 20대의 대부분을 외주 프리랜서로 일하면서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고 하다 그 꿈도 자의반 타의반으로 접게 됐었다.
아무튼 2001년 복학했을 당시에도 잠깐이나마 카툰을 그려봐야지 하고 생각했었는데 특별히 주제를 갖기 보다는 뭔가 알쏭달쏭한 무제(無題, untitled)류의 작품이 끌렸었고 그때 그린 작품들이 환경문제와 관련한 관련된 아래의 무제 1, 무제 2 작품이다. 그리고 2002년 한일월드컵 시즌의 붐업 조성을 위한 카툰 전시가 있었는데 그 때 그린 작품이 타조랑 축구공이 등장하는 아래의 작품이 있고 그 뒤로는 카툰과는 인연을 끊고 애니메이션 배경작업과 연출을 하기 시작했다.
<무제 1>
<무제 2>
<월드컵 카툰>
그러던 중 졸업하고 한참 지나 삼십대 중반쯤 되어서 고경일 교수님을 다시 만나게 되면서 카툰을 그리게 됐다. 하나는 밀양 송전탑과 관련한 작품 <도시의 달> 그리고 다른 하나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와 욱일기를 소재로 한 <눈물>이라는 작품이다.
<도시의 달 / 2013>
<눈물 / 2014>
이 뒤로는 정말 다시는 카툰을 그릴 일이 없었다. 풍자만화도 그렇고 카툰도 그렇고... 그릴 때는 잘 모르는데 그리고 나서는 항상 ‘참 난 카툰에 재능이 없는 것 같다’란 생각이 드는 것이다.
꿈의 변천사를 보면 어릴 때는 만화가, 고등학생 때는 화가, 대학생 때부터 삼십대 초반까지는 카투니스트와 애니메이터, 웹툰작가였었는데 지금은 일러스트레이터라 자칭하는 미술교육 사업자가 되어 있다.
사실 지금은 꿈이란 게 특정할 수 있는 직업이 아니라 그 사람의 걸어가는 길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림은 그저 나를 표현하는, 내가 표현하는 삶의 태도 중 하나일 뿐이란 것이다. 아무튼 내일은 지사 회원전시 홍보지원을 위해 캐리커쳐를 하러 청주에 내려간다. 예전 같았으면 ‘내가 사업자 대표씩이나 돼서 이게 뭐하는 짓인가’라거나 ‘내가 이 나이 먹고서 대단한 작품 활동은 못할망정 고작 아이들 캐리커쳐나 해주러 가야하는가’라고 생각했을 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앞서 얘기했듯 이게 내가 내 삶을 표현하는 방식이고 증명이다. 나이나 경력, 지위에 상관없이 직접 솔선수범하는 것 말이다.
갑자기 지금의 내 생각을 담은 카툰이 그리고 싶어져서 옛날 작품들을 꺼내보다 몇 자 끄적여 봤다. 그렇지만 솔직히. 앞으로도 대단한 카툰도 소소한 카툰도 그리지는 못할 것 같다. 그냥 지금 이렇게 나를 표현하는 것만으로 충분히 만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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