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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점심은 평소보다 빨리 흡입했다. 키우는 열 여덟살 먹은 멍멍이가 심장약을 복용 중인데 약을 이틀이상 안 먹으면 밤새 기침을 해서 내가 못 잔다. 점심시간을 이용해서 다니는 동물병원에 약을 지으러 갔다. 한 달에 약값이랑 간식비랑, 사료비 기타 등등하면 한 삼십 만원정도가 지출 된다. 사실 전에도 며칠 기침하고 말겠지 했는데 일주일 내내 기침을 하니 내 스케줄이 꼬이기 시작했다. 말 못하는 그녀석의 고통보다는 고만 기침하고 제발 좀 자라는 생각뿐이었다. 물론 몇 번인가 동물병원에 데려간 적은 있다. 유선 종양이 커지고 있다는 둥, 허리에 디스크가 있다는 둥, 관절염 때문에 다리를 저는 것이고 눈도 백내장이 와서 좀 안 보이고 췌장 수치가 어떻고 간 수치가 어떻고.. 난 수술시킬 생각은 절대로 없었다. 그땐 때가 되면 가야지 억지로 연명시키진 말자란 생각이었다. 물론 그건 나에게도 적용시키고자 맘 먹은 내 인생관이었다. 나도 억지로 살고 싶은 생각은 절대로 없었기 때문이었다.
오늘 간 동물병원은 평소완 좀 달랐다. 올초부터 진료도 보고 약을 사러 갔었는데 매번 어떻게 오셨나요라고 묻던 간호사분이 짜장이(우리집 멍멍이 이름) 약 지으러 오셨나요라고 먼저 물었고 지나가던 수의사분이 이번에도 2주분 지어드릴까요?라고 물어서 난 그렇다고 대답했다. 이젠 나와 짜장이를 알고 있구나란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먼저 와 있던 모자지간으로 보이는 두 사람이 침통한 분위기를 풍기며 대기석에 앉아 있었다. 수의사가 10분 정도 저기에 앉아 기다리시면 조제해 드릴게요라고 말했고 난 그 침통한 두 사람 옆에 아무렇지 않게 앉았다. 뜻하지 않게 두 사람의 대화를 들을 수 밖엔 없었다.
대학생쯤으로 보이는 아들은 어머니로 보이는 분의 한마디 한마디에 짜증을 내고 있었다. 참 버르장머리 없는 녀석이라고 속으로 생각하고 있었는데 한참을 듣고 보니 이런 내용이었다. 그들의 개도 나이가 많았고 종양이 있었으며 거의 시한부 인생이라는 것이었다. 딱히 손 쓸 방법이 없었다. 어어머니로 보이는 분은 구체적으로 입밖으로 표현하진 않았지만 안락사를 시키자는 뉘앙스였고 아들은 그것에 대한 강한 거부감을 드러내고 있었다.
그들의 불편한 대화가 오가는 사이 진료실에서부터 주인들과 격리됬던 그 주인공인 개가 간호사 분을 통해 그들에게 전달됬다. 그런데 그 개는 겉으론 굉장히 동안이었다. 이런 표현을 써도 되는 것인진 모르겠지만.. 우리집 멍멍이도 동안이긴 하지만 그분들의 멍멍이는 짜장이처럼 백내장 때문에 눈이 뿌옇거나 몸에 검버섯이 잔뜩있거나 탈모가 있어 보이진 않았다. 하지만 그 개는 사시나무 떨듯 떨고 있었고 주인의 품에 안기자마자 뒷다리에 힘을 잃고선 똥과 오줌을 지리고 있었다. 아들 녀석의 입에선 연신 씨발 씨발 소리가 작지만 분명하게 터져 나오고 있었다. 두 사람은 제대로 서지 못하고 자꾸만 쓰러지며 똥오줌을 지리는 녀석을 부축하고선 엉덩이와 바닥을 연신 황급히 닦아내고 있었다.
처음 짜장이를 동물병원에 데려 갔었던 기억이 떠올랐다. 종양이며 디스크며 시력이며 온갖 무서운 말들로 내 맘을 뒤흔들었던 순간이 아직도 선하다. 근데 그게 벌써 3년 정도 전의 이야기이다. 물론 그때도 수의사분은 암의 진행속도란 게 동물들마다 다 다르다고 했고 사실 어떤게 더 나은 방법인지는 워낙 고령견이기 때문에 자기가 제안 할 수 없다고 말했다. 오로지 선택은 보호자분의 결정이라고. 그래서 난 수술하지 않고 생을 마감하는 순간까지 곁에서 그저 같이 있어 주는 주인으로 남기를 결정했었다.
난 지금도 틈만나면 애완, 반려 목적의 생물체들 키우거나 입양하는 것을 지양하라고 이야기한다. 끝까지, 죽음까지 책임질 거 아니면 함부로 생명을 자위 때문에, 외로움 때문에 방에, 맘에 들이지 말라고 말이다.
어젠가, 그젠가.. 야근 후 집에 늦게 들어갔는데 귀도 어두워졌는지 출입문이 열릴 때 들리는 시끄러운 소릴 듣고도.. 그리고 내가 바로 앞에 섰는데도 멍때리고 있는 짜장이를 잠시동안 지켜봤다. 이윽고 아직 후각은 남았는지 내 체취를 맡고선 찢어질 듯한 큰 소리로 낑낑대며 짜장이는 울어댔고 꼬리가 떨어질새라 마구 흔들어대기 시작했다. 난 언제나처럼 녀석을 안아 올리고선 뒷마당으로 나갔고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냄새맡고 쉬하고 응가하는 녀석을 몇걸음 뒤에서 느릿하게 쫓았다. 그때 지나가시던 노신사분이 갑자기 걸음을 멈추고선 짜장이를 애정어린 눈길로 보기 시작했다. 입가엔 지극한 미소가 있었고 주름은 깊었으며 색바랜 염색머리를 하고 계셨다. 이리저리 돌아다니던 짜장이가 그 분의 발 밑에 다다라 킁킁 냄새를 맡기 시작했고 그제서야 어르신은 나에게 말을 거셨다.
"나이가 많은 가봐요?"
"예, 열여덟 이에요."
"아.. 어디가 좀 안 좋은가 보죠?"
"예, 종양도 있고 디스크랑 관절염이랑 좀 많아요."
"아.. 요즘엔 나이먹고 병들면 안락사 시킨다던데.."
"에이, 어떻게 그래요. 얜 몸은 좀 아파도 정신은 멀쩡해요. 정신이 멀쩡한데 함부로 어떻게 그래요."
"맞아요. 그렇죠. 이렇게 멀쩡한데요."
그 어르신은 한동안 계속 절룩거리면서도 열심히 냄새 맡고 오줌싸고 여기저기 돌아다니는 짜장이를 지켜보고 계셨다.
오늘 간 동물병원에서의 상황과 어르신과의 대화 그리고 애증의 우리 짜장이까지. 난 늘 생각한다. 그리고 이 글을 읽는 누군가도 같이 고민하고 생각해줬음 한다.
모든 생명은 나이를 먹고
모든 생명은 병들고 약해지며
모든 생명은 언젠간 죽는 다는 것.
그러니 곁의 무엇이든
후회없이 사랑하고 끊임없이 아껴 줄 것
쉽게 사랑하지 않되 사랑하기로 맘먹었다면
쉽게 포기하지 말고 인내하며 지극할 것
그리고 지금 그 순간에 가장 충실할 것
여러분들의 곁에 사랑과 평화가 늘 함께 하기를
ps. 사실 어제 썼던 글임.
#모든 #반려견 #동물병원 #안락사 #사랑 #평화 #인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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