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인의 칼이라더니 잘 들긴 하네... 근데 좀 억울하다...
어제 가족들과 김장을 했다.
절임배추가 오전 중에 배송될 예정이라 김치 속 재료를 준비하시는 어머니를 도와드리기 위해 식칼을 들고 파를 썰었더랬다. 그러던 중 어머니께서 여동생이 보내 준 좋은 칼이 있다면서 바꿔주셨는데 예전에 다스뵈이다에서 봤던 장인의 칼 ‘한국제일도’였다!
근데 칼이 진짜 잘 들어도 너무 잘 들어서 단단한 무도 서걱서걱, 당근도 서걱서걱 그리고 내 손바닥도 서걱...
왼손 바닥과 오른손으로 칼을 쥔 상태로 자른 파를 모아서 그릇에 담으려는 순간 식칼의 손잡이 위쪽 모서리로 내 손바닥의 포를 뜨고 말았더랬다...
역시 명인의 칼이라 그런지 날의 시작부터 모서리까지 날카롭지 않은 구석이 없군...하면서 휴지로 지혈을 한다. 집에 있는 밴드로는 상처부위가 안 가려질 정도로 좀 넓게 포가 떠져서 아부지께서 부랴부랴 약국에 넓은 밴드를 사러 가셨다.
원래 평소에 일 못하는 사람이 다치는 거라고 말하고 다녔었는데... ㅡ_ㅡ;; 근데 내 경우엔 칼질을 하다가 다친 게 아니라 다듬은 재료를 모으다가 다친 거라 좀 억울하긴 하다. 쳇...
피가 멈출 때까지 식칼은 못 잡고 풀죽을 쓰는 일로 주방보조 업무 변경. 밴드도 넓은 걸로 갈아 끼우고 나선 다시 식칼을 잡고 무채를 써는데 어무이가 장인의 칼을 다시 가져가시고 평소에 사용하던 날이 무딘 칼로 바꿔주셨다. 그래... 장인의 칼은 장인이 사용해야지... 나 같은 애송이 주방보조가 좋은 칼을 사용해봤자 다치기나 하고...
내가 도중에 다치는 불의의 사고?를 제외하곤 어무이께서 다른 속 재료들은 미리 준비해두셔서 일은 일사천리로 척척 진행되었다. 김치 속 재료로 정말 다양한 재료들이 들어가서 이건 맛있고 건강할 수밖에 없다!라는 확신과 함께 빨간 고무장갑을 끼고 열심히 버무린다.
큰 고모님과 동생네 식구들까지 모두 도착해서 다 같이 김치를 버무리니 순식간에 김장이 끝났다. 역시 김장은 속 재료 준비가 8할이다. 김장을 마치고 돼지고기 수육까지 삶아서 커다란 상에 펼쳐 놓은 것이 오후 3시 경. 그때부터 술잔치가 시작되었다.
오랜만에 가족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기도 하고 유튜브로 싱어게인3 다시보기를 하던 중 19호 가수님의 겨울왕국 안나 송에 “언니!”하고 부르는 소리가 들리자 안방에서 휴대폰을 보며 놀고 있던 큰조카가 거실로 나오며 묻는다. “OO왔어?”
막내 조카는 친구들이랑 놀다 오겠다고 김장에 불참해서 자리에 없었는데 동생이 와서 자기를 부르는 줄 알고 착각했던 것이었더랬다. ㅋㅋㅋ
저녁이 되어서야 데리고 온 막내 조카에게 외할아버지가 용돈 줄 테니까 피아노 한 곡만 쳐달라고 사정하는데 안 친다고 내빼자 지 엄마가 그럼 내가 쳐야지 하면서 뭔가를 치니까 가족들 반응이 “와~ OO이가 언제 피아노를 배웠지?”
알고 보니 어릴 때 어무이께서 어려운 형편인데도 악기 하나는 배우는 게 좋다고 생각해서 피아노 학원 원장님 자식들을 우리 미술학원에서 미술을 가르쳐주는 조건으로 맞교환 교육을 했던 것이었다. 역시... 뭐든 어릴 때 배워둬야 한다. 난 삼십 대 때 나이 먹어서 내 손이 멀티태스킹이 안 된다는 것을 깨닫고 통기타 배우는 것도 포기...
암튼 여동생이 피아노를 치니 그제야 막내 조카가 옆에 달라붙어서 같이 아는 곡을 치기 시작한다. 너무 사랑스럽고 예쁜 광경이라 아부지가 조명을 고쳐 만지시고, 어무이는 영상을 촬영하시고 나는 그런 모습들을 또 사진으로 담는다.
밤 10시쯤 자리를 파하고 설거지까지 마친 뒤 침대에 고단한 몸을 누인 뒤 순식간에 잠에 빠져들었고 오늘 오전에 출근 시간에 맞춰 기상을 해서는 아... 피곤이 안 풀리네... 오늘은 회사 쉴까하고 생각하다 아! 오늘 일요일이군!! 출근 안 해도 된다~ 만세~~~ 다시 두어 시간 정도 눈을 붙인다.
다시 잠을 깬 뒤 개운하게 일어나서 밤새 비워진 길고양이 사료와 물을 새로 챙겨주고 사무실로 향한다. 이 일기를 쓴 뒤에는 풍자 일러스트 작품 하나를 그려야지라고 맘 먹으며.
#김장 #가족 #장인의칼 #따숩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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